잭 존슨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어려웠던 싸움
1908년 12월 26일, 호주 시드니에서 잭 존슨이 토미 번스를 꺾었습니다.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흑인 선수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존슨의 승리는 한 선수의 기록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챔피언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를 쓰러뜨릴 백인 선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존슨은 1878년 텍사스주 갤버스턴에서 노예였던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두에서 일하며 복싱을 시작했고, 1901년에는 조 초인스키와 경기를 치렀다가 두 사람 모두 체포됐습니다. 당시 텍사스에서는 프로 복싱이 불법이었습니다. 감방에서 초인스키에게 방어 기술을 배웠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데, 존슨이 이후 보여 준 경기 방식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서둘러 치지 않았던 헤비급 챔피언
존슨은 상대가 먼저 달려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펀치를 몸과 팔로 흘려보내거나 가까스로 피한 뒤, 상대가 자세를 회복하기 전에 되받았습니다. 헤비급 복싱이 강한 주먹을 주고받는 경기로 여겨지던 시대에 그는 방어와 거리 조절만으로도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긴 라운드 동안 상대의 공격을 받아 내며 체력을 소모시키는 운영도 능숙했습니다. 상대가 조급해질수록 존슨에게는 반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1910년 복귀한 전 챔피언 제임스 J. 제프리스를 꺾은 경기에서도 이 방식이 드러났습니다. 제프리스에게 쏠린 기대가 컸지만, 존슨은 상대의 명성에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링 밖에서 계속된 충돌
그의 사생활과 공개적인 태도는 당시 인종차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공격받았습니다. 1913년에는 이른바 맨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렀습니다. 1915년 쿠바에서 제스 윌러드에게 타이틀을 잃은 뒤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194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2018년 사후 사면을 받았습니다.
존슨의 복싱을 볼 때는 당시의 긴 경기 시간과 사회적 배경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경기에서는 느긋하게 상대의 빈틈을 기다렸지만, 링 밖에서는 타인이 정해 놓은 역할을 거부하며 살았습니다. 두 모습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잭 존슨이라는 한 선수의 경력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