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ING HISTORY
복싱 히스토리
워워리어복싱잭 존슨 —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어려웠던 싸움
1908년 12월 26일, 호주 시드니에서 잭 존슨이 토미 번스를 꺾었습니다.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흑인 선수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존슨의 승리는 한 선수의 기록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190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잭 뎀프시 — 공격적인 복싱을 기술로 설명한 선수
1923년 루이스 앙헬 피르포와 싸우던 잭 뎀프시는 링 밖 기자석까지 떨어졌습니다. 가까스로 링에 돌아온 그는 다음 라운드에 피르포를 쓰러뜨렸습니다. 위험한 장면과 극적인 결말 때문에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191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진 터니 — 잭 뎀프시를 두 번 이긴 준비의 방식
1926년 진 터니가 잭 뎀프시에게 도전했을 때, 대중의 관심은 대부분 뎀프시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뎀프시는 강한 압박으로 유명한 챔피언이었고, 터니는 책을 즐겨 읽는 차분한 선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192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막스 슈멜링 — 조 루이스를 쓰러뜨린 오른손, 그리고 정치가 된 경기
1936년 막스 슈멜링은 무패를 달리던 조 루이스에게 첫 패배를 안겼습니다. 루이스가 잽을 던진 뒤 왼손을 낮추는 습관을 찾아낸 것이 승부의 단서였습니다. 슈멜링은 그 틈에 오른손을 집어넣는 전략을 준비했고, 12라운드에 경기를 끝냈습니다.193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조 루이스 — 한 번의 패배 이후 바뀐 경기
1938년 6월 22일, 조 루이스는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막스 슈멜링을 다시 만났습니다. 2년 전 슈멜링에게 프로 첫 패배를 당했던 그는 이번에는 경기 시작부터 공격했습니다. 승부는 1라운드 2분 4초 만에 끝났습니다.193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헨리 암스트롱 — 세 체급 챔피언이 동시에 가능했던 시절
헨리 암스트롱은 1937년 페더급, 1938년 웰터급에 이어 같은 해 라이트급 세계 타이틀까지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체급의 타이틀을 거쳐 가는 선수들이 있지만, 암스트롱은 서로 다른 세 체급의 챔피언 자리를 동시에 보유했습니다.193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슈거 레이 로빈슨 — 한 가지 스타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서
1957년 슈거 레이 로빈슨은 진 풀머와 미들급 타이틀 재대결을 치렀습니다. 앞선 경기에서는 풀머에게 밀렸지만, 이번에는 5라운드에 짧은 왼손 훅으로 상대를 쓰러뜨렸습니다. 그 장면이 유명한 이유는 펀치의 위력만이 아닙니다.194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윌리 펩 — 때리지 않고도 상대를 흔든다는 것
윌리 펩은 주먹을 세게 치는 선수보다 주먹을 맞지 않는 선수로 더 유명했습니다. 상대가 펀치를 던지면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고, 곧바로 다른 각도에서 반격했습니다. 당대 페더급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뛰어난 방어와 발놀림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194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로키 마르시아노 — 49전 전승을 만든 짧은 거리의 싸움
로키 마르시아노는 49번의 프로 경기를 치르고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채 은퇴했습니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라는 지위와 49전 전승이라는 기록 때문에 완벽한 선수였을 것 같지만, 그는 체격에서도 기술에서도 전형적인 헤비급 복서는 아니었습니다.195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아치 무어 — 챔피언을 기다리는 동안 완성한 복싱
아치 무어는 오랫동안 강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세계 타이틀전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 승리를 쌓았지만 챔피언을 만날 수 없었고, 마침내 라이트헤비급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젊은 선수가 아니었습니다.195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플로이드 패터슨 — 챔피언에서 도전자로, 그리고 다시 챔피언으로
1959년 플로이드 패터슨은 잉에마르 요한손과의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일곱 차례 다운을 당하며 패했습니다. 당시까지 가장 어린 나이에 헤비급 챔피언이 됐던 선수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 재대결에서 패터슨은 요한손을 쓰러뜨리고 타이틀을 되찾았습니다.195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김기수 — 장충체육관에서 탄생한 한국 첫 세계 챔피언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김기수가 니노 벤베누티를 판정으로 꺾었습니다. 한국 선수가 프로복싱 세계 타이틀을 차지한 첫 경기였습니다. 국내 복싱이 세계 무대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이 승리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196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무하마드 알리 — 같은 챔피언, 서로 다른 두 가지 복싱
1964년 무하마드 알리는 소니 리스턴을 꺾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당시 그는 빠른 발과 잽을 앞세워 헤비급 선수답지 않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0년 뒤 조지 포먼을 이길 때는 반대로 로프 가까이 머물며 상대의 힘을 소모시키는 경기를 펼쳤습니다.196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에데르 조프레 — 밴텀급 정상에서 내려온 뒤 다시 챔피언이 되다
브라질의 에데르 조프레는 1960년 세계 밴텀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1965년과 1966년 파이팅 하라다에게 연달아 패하면서 정상에서 내려왔지만, 몇 년 뒤 체급을 올려 돌아와 다시 세계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196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조 프레이저 — 알리의 발을 멈춰 세운 왼손 훅
1971년 3월 8일 조 프레이저는 무하마드 알리와의 첫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15라운드에 터진 왼손 훅이 알리를 쓰러뜨린 장면이 특히 유명하지만, 그 한 방만으로 경기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196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로베르토 두란 — 거칠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술
로베르토 두란의 별명은 '돌주먹'입니다. 강한 펀치와 거침없는 압박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실제 경기를 보면 그는 단순히 맞아 가며 전진하는 선수가 아닙니다. 머리를 움직이고,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고, 링의 공간을 줄이는 기술이 공격을 떠받쳤습니다.197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슈거 레이 레너드 — 상대에 따라 경기를 바꾸는 기술
슈거 레이 레너드는 빠른 손으로 유명했지만, 그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장기간 경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속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상대의 강점에 따라 싸우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1980년 로베르토 두란과의 두 경기는 그 차이를 잘 보여 줍니다.197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조지 포먼 — 스물넷의 챔피언과 마흔다섯의 챔피언
조지 포먼은 1973년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 만에 쓰러뜨리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강한 펀치와 공격적인 압박은 당시 헤비급에서도 위협적이었습니다. 21년 뒤 마흔다섯 살에 마이클 무어러를 꺾고 다시 챔피언이 됐을 때 그의 움직임은 전혀 달랐습니다.197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홍수환 — 네 번 다운당한 2라운드 이후에 벌어진 일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경기에서 홍수환은 2라운드에 네 차례 다운을 당했습니다. 누구라도 패배를 예상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났고, 3라운드에 상대를 쓰러뜨려 KO승을 거뒀습니다.197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마빈 해글러 — 7년을 기다려 얻은 미들급 타이틀
마빈 해글러는 1980년 세계 미들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프로 데뷔 후 7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동안 그는 이미 강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타이틀전에 쉽게 나서지 못했고, 1979년 첫 도전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198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마이크 타이슨 —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된 전성기
1986년 마이크 타이슨은 스무 살의 나이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트레버 버빅을 2라운드에 쓰러뜨리며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상대를 순식간에 끝내는 경기들이 이어졌고, 1988년 마이클 스핑크스전은 91초 만에 끝났습니다.198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에반더 홀리필드 — 크루저급에서 헤비급 정상까지
에반더 홀리필드는 처음부터 헤비급 선수로 이름을 알린 것이 아닙니다. 크루저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통합한 뒤 더 큰 선수들이 기다리는 헤비급으로 올라갔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세계 정상에 올랐고, 마이크 타이슨과의 경기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198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훌리오 세사르 차베스 — 몸통 공격으로 만든 긴 무패 행진
1990년 멜드릭 테일러와의 경기에서 훌리오 세사르 차베스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채점에서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료 직전 오른손을 맞혀 테일러를 쓰러뜨렸고,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습니다. 경기 종료를 불과 몇 초 앞둔 상황이었습니다.198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레녹스 루이스 — 긴 잽을 경기의 중심에 놓은 헤비급
레녹스 루이스는 키와 리치가 큰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체격이 좋다는 사실만으로 헤비급 정상을 오래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가 강했던 이유는 긴 팔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199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로이 존스 주니어 — 반사신경이 만들어 낸 자유로운 복싱
로이 존스 주니어는 종종 두 손을 낮게 내린 채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습니다. 보통 복싱 지도에서 권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존스는 상대의 주먹이 나오는 순간 상체를 움직여 피하고 곧바로 빠른 훅으로 반격했습니다. 뛰어난 반응 속도 때문에 가능한 경기 방식이었습니다.199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매니 파키아오 — 여덟 체급을 올라가며 바뀐 공격
매니 파키아오는 플라이급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뒤 체급을 여러 차례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훨씬 큰 상대들과 싸웠고, 결국 여덟 체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로 기록됐습니다.199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버나드 홉킨스 — 나이가 들수록 더 적게 움직이며 이긴 선수
버나드 홉킨스는 2011년 마흔여섯 살에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당시 최고령 세계 챔피언 기록을 새로 썼고, 이후에도 그 기록을 다시 고쳤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빠른 손과 활동량으로 경쟁하는 무대에서 홉킨스는 다른 방식으로 버텼습니다.199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 펀치를 적게 맞히게 만드는 경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는 프로 50전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경기에서 압도적인 KO승을 거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자신을 정확하게 맞히기 어려운 위치를 만들고, 빈틈이 생길 때 필요한 만큼 공격하는 운영이 그의 복싱을 대표합니다.199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바실 로마첸코 — 상대의 정면을 벗어나는 발놀림
바실 로마첸코는 상대가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 옆으로 자리를 바꾸는 선수였습니다. 멀리 도망가는 움직임과는 다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각도를 바꿔 상대가 고개와 몸을 다시 돌려야 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2010년대읽기 →
워워리어복싱케이티 테일러 — 아일랜드 여자 복싱의 무대를 넓힌 선수
케이티 테일러가 처음 복싱 경기에 나섰던 시절에는 여자 선수가 공식 경기에 출전하는 것조차 지금처럼 익숙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테일러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오랫동안 정상에 있었고, 이후 프로로 전향해서도 큰 무대에서 세계 타이틀전을 치렀습니다.2010년대읽기 →
